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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nds of The Creator 백승기 ①

2018-01-24 오전 9:33:00

미용인의 손은 ‘창조’하는 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소중하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이자 사진가인 김세호가 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기록한 창조하는 손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한국의 미용인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글/사진(인터뷰) 김세호(사진가, 헤어 스타일리스트)
에디터 장혜민
 
“마디가 벌어진 손가락. 결점을 극복한 열정이 그를 창조자로 만들어주었다” -김세호



profile
현 RUSH Art team
RUSH Company consultant
전 사이리즘 교육실장
영국 Vidal Sassoon postgraduate course 졸업(2006년)
LOREAL Professional Colour Expert 수료(2015)


현재 영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미용인 백승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1995년 처음 미용을 시작했어요. 제가 미용을 시작한 계기는다른 사람들과 좀 다릅니다. 특별히 미용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미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남자가 미용을 한다는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시기였거든요.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재수를 준비할 무렵, 미용실을 운영하던 작은어머니께서 어차피 입시까지 시간이 있으니 미용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셔서 기대 없이 시작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자격증을 따고 미용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답답한 부분이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미용 교육이 오로지 자격증을 따기 위한 배움이었고,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전부였죠. 물론 그렇게 해서 배운 것도 많지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미용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초급 미용사로서 막 타이틀을 달 시기에 군대 영장이 날아왔습니다. 계속 불려가 매일 이발을 했던 경험이 그때는 지옥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또 한 번 미용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죠. 내 미래가 너무 뻔해 보여 지루한 느낌이었달까요? 전문적인 미용 지식을 쌓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배웠던 실력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대 후 작은어머니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죠. 이제는 미용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것 같다고요. 그랬더니 미용 재교육기관을 추천해주셨어요. 새로 생긴 재교육 아카데미인데 그곳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며 이곳에서마저도 네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 그땐 그만둬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죠. 그렇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들어간 곳이 커트 전문 재교육기관인 사이리즘인데 그곳에서 상상도 못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커트 자세를 가르쳐주어 몸에 무리도가지 않고 밸런스의 정확도를 높여주는 방법부터 두상과 자르는 각도를 연구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기술까지, 그 당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이었어요. 제 미용 인생은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모든꿈을 꾸기 시작했죠.

한국에서 영국 런던으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사이리즘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마치고 사이리 원장님의 권유로 강사가 됐어요. 제 기술의 기초를 다진 곳이죠. 강사가 된 후 수강생들에게 “이것이 베이식입니다”라고 말하며 가르치던 초반 몇 개월 동안 내내 “이 기술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리고 “이 기술들이 왜 베이식이 됐는지 또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고 그곳에서 방법을 배운다면 나 또한 나만의 새로운 베이식을 창조할 수 있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다음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리서치를 하다 보니 당시 세계의 거의 모든 미용의 토대를 만들어낸 비달사순과 토니앤가이가 있는 영국 런던에가고 싶었고 그곳에 가겠다는 일념하에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4년간 모아 영국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런던에서의 초창기 생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2003년 10월에 결혼하고 그해 12월 영국에 와보니 막막했어요. 국내에서 4년을 준비해 이곳에 왔지만 막상 일이 바쁘다 보니 돈과 마음만 가지고 온 거죠. 영어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비달사순을 가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왔기에 시작이 참 막막했어요. 없는 돈에 학생 비자로 와 직장을 구하지 못하니 무조건 아꼈습니다. 하루는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은데 한인 타운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사오기엔 차비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어떻게라도 먹고 싶은 마음에 근처 슈퍼에서 삼겹살과 비슷한 저렴한 고기를 사와 구워 먹었는데 너무 짠 베이컨이어서 다시 물에 씻어 구워 먹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아요.

또한 Home hair(출장 헤어 서비스)를 하고 다녔죠(영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개인적으로 Home hair가 불법이 아닙니다).
영어를 못하니 당시 영국에 있는 한국인을 위한 웹사이트에 머리를 한다고 광고를 올리고 30분에서 1시간 거리도 마다 않고 찾아가 용돈을 벌며 살았어요.

첫 9개월 동안 랭귀지 스쿨에 가서 영어 공부를 했지만 그렇게 많이 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볼 땐 영국에 가서 1년 언어연수만 하면 유창하게 말할 것 같지만 정말 열심히 하지 않는 한 어렵거든요. 그렇게 영어도 안 되는 제가 영국 돈 15,000파운드(당시 환율로 3,300만원)라는어마어마한 교육비를 내고 비달사순에 간다 해도, 선생님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못하고 멍청히 앉아만 있다가 나올 것 같아서 계속 망설이다가 그 이듬해가 돼서야 등록했습니다.

비달사순에 가서 처음에는 약간 실망 아닌 실망을 했어요. 생각보다 선생님들의 기술이 우리와 다르게 정확성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의 커트 기술은 정확성을 우선으로 했기에 한 섹션 한 섹션을 정확히 잘라 한 치도 실수 없는 과정을 중시한 커트였죠. 그러나 비달사순의 교육은 과정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마무리의 모양을 위한, 한마디로 ‘결과’를 위한 커트였습니다.

하지만 제게 15,000파운드
의 돈이 아깝지 않았던 단 하루의 수업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은 비달사순 수장의 개인 레슨도 아니었고, 커트와 컬러도 하지 않은, 한 역사학자의 순수한 이론 수업이었죠. 그해 비달사순의 새로운 컬렉션인 뱀프(뱀파이어)에 대한 배경과 영감을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해 의상과 메이크업, 액세서리, 커트와 컬러 그리고 마무리까지 보여주는 한마디로 영감을 이미지화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때의 깨우침은 그동안 제가 가졌던 모든 답답함을 해소하고 제 안의 무언가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날의 수업이 현재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RUSH에 들어가기까지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비달사순 코스를 수료하고 영국에 남아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영어가 능통하지 않았고 비자도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의 취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가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비자도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여부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매일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는 자리를 선뜻 내어주겠어요. 또한 꿈이 있기에 교육이 잘이뤄지는 큰 규모의 살롱을 찾다 보니 3~4개월을 전전긍긍하며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 친구를 통해 RUSH라는 살롱을 알게 된 거죠.

처음 이야기를 듣고 웹사이트로 이곳을 알아보았을 때는 살롱의 개수가 7개였는데,한 달 뒤 다시 보니 9개로 늘었더군요. 이 회사는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제가 찾던 곳이란 걸 느꼈죠. 사순이나 토니앤가이와 같은 곳에 취업을 한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곳은 이미 최고의 정점을 찍은 회사로, 외국인인 제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RUSH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회사니 직원도 많이 필요할 것이고 아트팀이나 교육자로서도 커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을것 같다고 생각했죠.

1차 면접, 2차 2명의 모델 시술로 트레이드 테스트를 합격 후 워크퍼밋 비자까지 받아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11년 8개월이 지난현재 RUSH는 영국에서 가장 빨리 성공한 회사이고 공식적으로 95개의 살롱과1개의 인터내셔널 아카데미가 있으며, 최근 1,800만 파운드(현재 환율로 263억원가량)의 투자를 받아 영국에 200개 매장 오픈과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있죠. 지금 생각해보면 행운의 선택이었어요.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많은기회를 얻었으니까요.

RUSH에서 본격적으로 미용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 겪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솔직히 처음에는 고객의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어요. 손님이 제 영어 선생님이나 다름없었죠. 손님의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Sorry?’라고 말했는데 그것도 3번 이상 물으면 실례가 될까봐 알아들은 척하며 ‘아~ 예’ 했는데 알고 보니 제게 질문을 한 것이어서 서로 멋쩍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영어교사 출신인 한 고객은 저를 붙잡고 2시간 이상 살롱 안에서 큰소리로제 발음 교정을 시켜준 적도 있었어요. 많이 감사했지만 부끄러움 역시 제 몫이었죠. 하하.

그래서 저만의 노하우는 첫째, 최대한 손님에게 내가 질문한다. 내가 질문해야 내가 아는 상식의 대화를 할 수 있고 알아듣기도 쉬워진다. 둘째, 손님과의 머리 상담은 항상 복명복창한다. 영어에도 도움이 되고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되어 생길 수 있는 실수를 줄여주며, 또한 손님이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알기에 불안감을 해소하여 나를 믿고 머리를 맡길 수 있다. 셋째, 상황마다 할 말을 만들어놓고 외워서 이야기한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제품을 권해드릴까요?’라고 상황에 맞는 문장을 10개 정도 외워서 상황에 따라 사용한다. 이 세 가지로 1년을 버텼어요. 이렇게 2년 정도를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물론 아주 간단하고 일반적인 대화가 다였지만요.

그렇게 입사 2년이 지난 어느 날 RUSH에서 포토 대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회사에 나를 입증할 수 있다는 기회라고 생각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촬영을 며칠앞두고 사진작가가 금전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서 틀어졌습니다. 모델 준비까지모두 끝난 상태에서 펑크가 난 상황이라 모든 것을 취소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촬영 이틀 전에 극적으로 아내 직장 동료의 친구인 한국인 사진작가를 소개받아 겨우 촬영을 마쳤어요. 이 작품으로 우승을 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RUSH 주니어아트팀에 합류하면서 제 꿈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됐습니다. 얼마 뒤 이 사진작가가 제게 연락을 해서 자신의 대학 졸업 작품을 함께 작업하기를 제안했는데 그무렵 저 역시 미용인으로서 꿈의 대회인 브리티시 헤어드레싱 어워즈(BritishHairdressing Awards)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공동 작업을 제안하고, 중국인 의상 디자이너와 한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합류해 4명이 모여 작업했죠.

또한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유학생이라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RUSH의 대표에게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대표는 경험이 별로 없는 제가 한 작품만을 제출하는 RUSH 대회에서는 우승했더라도 자그마치 8개 작품을 만들어야하는 대회에는 한참 부족하다며 거절했습니다. RUSH는 이미 당시 저와 같은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다른 직원에게 10,000파운드(당시 환율로 2,000만원)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원받기는 더욱 힘들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0만원을 지원받았던 친구는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고, 전 우승은 못했지만 결승까지가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회사의 신뢰를 얻으며 조금씩 재정 지원을 받았고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8번의 브리티시 헤어드레싱 어워즈에 나가 8번 모두 최종 결승까지 올라갔으며, 2010년과 2013년에는 우승까지 하는 행운을 얻었죠.

헤어 디자이너로서 살롱워크에 한정되지 않고 헤어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 미용인으로서 모든 일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데 살롱워크만으로는 항상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그것을 머릿속으로, 종이로 그려보며 마지막 작품으로 표현하는 기쁨은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 같아요. 손님의 머리는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시간 내에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이 따르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죠. 그리고 작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따르는 수많은 실패와 성공은 제게 더 많은 노하우와 정보를 알려주며, 결국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짧은 시간 안에 무제한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미용사에게 헤어 작품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미용 문화와 비교해 한국의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영국 살롱에서 근무하면서제가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다른 사람의 실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됐다는점입니다. 한국에 있었을 땐 살롱에서 다른 디자이너를 칭찬하게 되면 혹여 내 손님을 빼앗기지 않을까 내가 너무 낮아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칭찬에 인색하고 부정적이었죠. 영국에서는 달라요. 다른 디자이너가 손님 머리를 하는 중이나 시술이 끝났을 때 머리가 예쁘면 손님이 보는 자리에서 바로 칭찬을 합니다. 이는 만약 손님이 그 머리에 확신이 없더라도 자신의 헤어에 대한 칭찬으로 자신감을 얻어 행복해지고, 주위에 추천을 해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죠.

또한 스태프룸에서는 그 디자이너에게 ‘아까 그 머리 정말 예뻤는데 어떻게 한 거야?’라고 질문하며 서로의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살롱에 긍정적인 기운이 생길 뿐 아니라 살롱 전체의 기술이 업그레이드되는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또한 손님과 상담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손님에게 ‘제가 아이디어는 있지만 다른 디자이너들과 상의해서 더 좋은 스타일을 만들어드리고 싶은데 함께 해도 될까요?’라고 정중히 말씀드린 후, 다른 디자이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 앞에서 함께 상의해 최고의 방법의 찾는 것도 스스럼이 없죠.

이러한 문화가 처음에는 좀 쑥스럽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살롱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깊어지며, 또한 살롱이 더욱 잘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미용일이 이제는 행복하게 느껴지면서 정말 즐기며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가장 고치기 힘들었던 부분은 한국에서의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틀을 맞추어놓고 교육하는 데 적응이 되어 있었던 저는,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는 의미가 아닌, 달라서 더 많은 의견이 생기고 그에 따라 발상의 전환이 되어 스스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단어라는 것을요.

물론 영국 미용 문화의 단점도 있어요. 어시스턴트가 선배 스타일리스트 옆에 붙어서 힘들게 배우기보다 아카데미나 칼리지처럼 체계적이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장소들이 많아지니 그곳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져 발생하는 문제가 있죠. 자연스럽게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도 떨어지고 초급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나면 노하우가 부족해 생기는 실
수가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한국 미용인들에게 한마디.
시대가 바뀌어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와 현재는 많이 변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른 디자이너의 실력에 박수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의 발전을 위한 참된 길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저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전 패션계 쪽에서 헤어 분야가 가장 느리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할 때가 많아요. 의상, 메이크업, 사진 등 거의 모든 패션과 뷰티 분야는 저마다의 좋은 대학교나 커리큘럼을 가지고 교육 입문부터 역사를 분석하고 해석해 저마다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사실상 헤어 교육은 타 분야와는 다르게 역사에 따른 헤어스타일을 분석해 알려주는 전문 교육이 부족하거나 오로지 기술 전수에 전념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유행이 반복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유행하거나 유명했던 스타일들을 시대적 
배경을 통해 분석해본다면 앞으로 유행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소스가 될 것 같아요. 오로지 기술만 배우는 것에 만족한다면 변화를 이끌지 못하고 따라가는 데만 급급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교육시킬 수 있는 대학을 더 장려하고 발전시켰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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