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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웰컴 투 헤어월드! ①

2018-02-20 오전 10:35:00

사무직, 스타 강사, 사업가로 일하다 미용업에 뛰어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미용 적응기와 미용업 전망.

에디터 최은혜
포토그래퍼 정푸르나
일러스트 김상호



각자 어떤 일을 하다가 미용업을 하게 됐나요?

성민: 전부터 가전제품 판매를 했어요. 지금도 가전제품 쇼핑몰을 하고 있고 아내와 미용업도 하고 있습니다. 가전제품 쇼핑몰은 오픈마켓에 입점해 있고 세탁기, 냉장 고 등 두루 판매하고 있습니다. 직원 4명의 작은 규모로 직원들에게 거의 맡기고 있 고 저는 주로 미용실 경영, 고객 관리, 매니저 등을 하고 있어요. 2시간마다 5개 매 장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고 있어요.

인효: 아내가 계속 미용실을 운영했는데 셔터맨(?)으로 도와주려고 하다가 경영까 지 맡게 되었네요. 이전에는 롯데호텔 인사노무 담당으로 10년을 일했어요. 사무직 이다 보니 연차가 쌓일수록 단순 업무가 됐고 나름 스트레스도 커서 그만두게 됐습 니다. 다른 일을 찾다 중고차 수출 회사, 과일 도시락 사업도 했는데, 아내가 개인 숍을 하다가 프랜차이즈로 전환할 때 힘들어해서 관리를 도와주며 미용에 발을 들였는데 4년 동안 절반 이상을 다퉜어요. 서로 이해 못하는 것들이 많았죠. 지금은 아 내도 미용 경영의 필요성을 깨닫고 저를 이해해줍니다.

저는 이전 회사에서 했던 인사 노무 업무 10년의 경험을 살려 복리후생 부분을 미용실에 적용했어요. 이젠 다른 매장과 차별화되니까 근속 기간도 늘어나고 국책사 업도 끌어오고 미용사회 일학습병행제, 도제사업 등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직원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걸 찾으면서 이들을 근로자라는 기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타 매장 부럽지 않은 분위기의 알짜배기 단일 매장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나래: 전 모태 미용인이에요. 어머니가 43년 차 미용인이시거든요. 어느 날 어머니 가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삶을 찾겠다며 일본어를 배우시더니 스타 강사가 되셨어요. <인간극장>, <느낌표> 같은 TV 프로그램에도 나오시고 국가의 행사에도 다니셨어 요. 그러다가 집 근처에 아담한 숍을 하고 싶다 하셔서 2011년에 언니와 어머니를 위한 살롱 ‘사월의 양’을 오픈했어요. 마케팅이다 뭐다 계속 관여하다 보니 어느 날 제가 경영자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1년 반 만에 점포가 3개 늘고 현재는 잠실 인근 에 4개의 간판이 걸려 있어요.

저는 전공을 살려 과학 강사로 활동했었어요. 지성과 미모를 갖춘 인기 과학 강사였어요.(웃음) 학생 중에서도 특목고 대상의 스페셜 그룹 학생들을 관리했죠. 학원 수업도 하고 사이드로 과외도 했어요. 그때 나이가 서른, 서른하나였는데 한 달 수입이 1천만원은 훌쩍 넘었죠. 학부모님들은 한번 잘 맞으면 충성 고객이 되거든요. 그 전에 학생 관리 경험이 고객 관리로 이어져서 이전에 가르쳤던 학생, 학부모, 동료 들을 다 저희 매장으로 끌어왔어요. 잠실쪽에서 과외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 어머님 들도 오고 계세요. 빅마우스다 싶은 고객들은 집중 관리했죠.

아파트 상가에 살롱이 있는데 아파트 특성을 빨리 파악하고 연령층과 타깃에 따라 고객 관리를 했고 디자 이너  일지, 인턴 일지도 만들었어요. 기술이 없는 원장이지만 디자이너와 인턴이 잘되게끔 조력자 역할에 주력했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실천하니까 직원들도 저의 진정성을 알아줬던 것 같아요.

성민: 저는 미용실 안에 사무실이 따로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고객들에게 차를 내주라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할 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 기하는 걸 좋아해서 고객들도 저를 편하게 대했어요. 그래서 나도 미용실 일을 해볼 까 생각했죠. 1년 정도는 저도 매일 아내와 싸웠어요. 인효: 저는 1년 동안 제일 많이 한 말이 “나 안 해. 당신이 다해!”였어요.(웃음)
 


미용업을 하면서 적응 안 됐던 점은 있나요?

인효: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이 미용업을 하면 기존에 하던 사람과 의견 충돌이 많아요. 아내가 원장인지라 의견 충돌이 많았고 디자이너와도 그랬어요. 제가 들어 와서 이것저것 환경을 바꾸니 대표니까 항의는 못하고 얼굴 찡그리면서 지시를 따랐 죠. 그런 와중에 한 디자이너가 저와 딜을 하더라고요. “인센티브 5 인상시켜주 시고 직책이 있으니 힘든 일은 안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거 안 지켜주면 저 나 갈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상대와 의견이 다르면 합의점부터 찾아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시술도 안 하면서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해요. 어떻게 보면 저도 기술자인데요. 단지 가위만 안 들었을 뿐이지 경영에도 기술이 필요하거 든요. “경영 기술은 내가 더 뛰어나니까 당신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다른 것뿐이지 틀린 건 아니다. 같이 맞춰서 진행해보자”라고 이야기해요. 현재 디자이너들은 제 말에 수긍하고 저도 맞추려고 노력해요.

서로 너무 다른 업종에 근무하다 융화되어 한길로 가려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근로기준법 준수 하나만 해도 힘들었어요. 직원들이 잘 모르니 근로기준 법, 복리후생, 타 매장과의 차이점을 상세히 설명해줬어요. 그리고 퇴직금도 꼭 주
니까 언제든지 그만둘 때 웃으면서 그만두라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직원 들이 무단이탈, 무단결근을 안 해요.

나래: 그럼 매장에서 근로자, 근로기준법이란 말을 많이 쓰세요?

인효: 제가 10년간 일 때문에 입에 달고 살았던 게 근로기준법이었으니까요. 디자 이너는 개인사업소득자로 하고 수수료 체계로 운영해요. 선을 확실히 긋고 디자이 너들은 제가 터치를 안 해요. 원장이자 같은 기술자인 아내가 소통하고 저는 계약서 정도만 관리해요. 인턴들과 근로자, 근로기준법에 대해 소통을 많이 하죠.

성민: 디자이너들은 개성이 강해요. 제 사람으로 만들기가 힘들죠. 제가 겪은 디자 이너들은 뭐랄까. 어렵게 살아온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한 지점의 원장님은 오 픈 멤버였는데 4년 전 한 달 급여가 최고 250만원이었어요. 기술도 좋은 분이었는 데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기본급만 7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했어요. 저는 “내가 이만큼 해줄 테니 그만큼 해달라”고 해요. 무엇을 하든 제대로 대우해 주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기술자인 아내는 처음엔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전 함께 오래 일할 사람이면 제대로 대우합니다. 제가 욕심을 부리면 그만큼 뻔한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나래: 저도 놀란 점이 크게 두 가지예요. 급여랑 수수료 체계가 아주 엉망이었고 인 력시장에서도 용어가 다양하고 무분별했어요. 스페어란 용어도 그렇고요. 또한 기 술직인데, 선생님은 있어도 스승이 없는 거예요. 월교육비 수당을 줄 테니 후배 교 육을 해달라고 했더니 가르치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교육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힘들었어요. 작은 것부터 소통이 안 이루어지니 어떻게 한 배를 타고 가는 조직원인 가 괴리감이 들기도 했죠.

성민: 맞아요. 제가 스승의날에 저희 선생님들한테 한마디 했어요. 꽃도 못 받는다 고요. 처음에 놀란 것이 인턴들이 스승의 날 저에게 꽃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디자 이너들에게 제자가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어요. 인턴들에게도 스승의날 감사 인사를 받는 선배가 되라고 이야기해요.

인효: 저도 그런 분위기를 경험했는데 직원들에게 교육을 하라고 하면 “귀찮아서 안 해요”라고 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교육 하기가 어려워 못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다행히 일학습병행제나 도제제도를 통해 현장교사라는 직책을 맡으면 근무하면서 교육할 수 있고 나라에서 교재가 나와요. 그러면 교육에 난감해하던 선생님들도 교재가 있으니  본인이 먼저 공부할 기회가 생기고 수월하게 교육을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도 교육을 받아야 교육을 잘 할 수 있듯 기본 틀이 있어야하죠.
 
미용업을 하게 돼 좋아진 점이 있다면요?

성민: 모든 사업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인효: 미용 경영이 재미있어요. 미용 경영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데 미용실도 기업, 회사라 생각하면 돼요. 직원들도 ‘나는 회사를 다닌다’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일하기 싫다고 마음대로 그만두는 곳이 아닌 거죠. 미용업에 경영을 도 입해서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바라는 대로 바뀌다 보니 직원들이 일하는 걸 좋아하 는 것 같아요. 아직 4대 보험을 안 해주는 곳도 있는데 우리 매장은 그런 걸 잘 지켜 주니까요.

한번은 그만뒀던 인턴이 다른 브랜드로 이직했는데 그 매장에서 “급여명세서는 안 주나요?”라고 물으니 다들 “그게 뭐냐”고 했다고 해요. 자괴감이 들어서 한 달 반 만에 저희 매장으로 돌아왔고 이번에 디자이너로 승급했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기 본을 지켜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은 게 아닐까요.

나래: 이전 직업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에 항상 쫓기는 직업이고 결과를 내기 위 한 스트레스도 컸어요. 그러다가 미용실에 오니 오늘 당장 몇 시간 뒤 결과가 나오 고 다들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소를 준다는 것, 아름다움 을 준다는 게 좋아요. 저 역시도 미용을 하면서 많이 예뻐졌어요. 누군가를 아름답 게 해주고 저는 그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게 좋아요.



박나래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스타 과학 강사로 활동하다 미용업으로 전직. 현재 뷰티 경영 멘토로 활동 하고 있으며 채움 아카데미 원장, ‘사월의 양’ 4개점 대표 원장, 다수의 살롱에서 리더스 및 관리자 과정을 진행 중이다.

문인효 이철헤어커커 은평뉴타운점 운영 중. 호텔롯데 인사 노무 대리로 일하다 1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중고차 수출과 과일 도시락 사업 등을 했다. 열정적인 일학습병행제 홍보대사.

박성민 중랑구 지역에서 리안 중랑역점 외 5개 매장 운영 중. 가전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미용업에 뛰어들었다. 외모(?) 때문에 미용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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